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롤루스 왕조 (문단 편집) ===== 성공 여부 =====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문화적 여파는 분명 실재했고,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카롤루스 대제가 기대하던 만큼 발전했는지, 또 근세의 "[[르네상스]]"에 비교해 그 이름이 과연 어울리는지 아닌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다만, 현재는 [[르네상스]] 자체에 그다지 큰 변화가 아니라는 비판 및 반론이 많다.] 우선, 속기술과 출판 기술의 발달로 과거에 이미 간행되었던 책 판본의 권수는 확실히 증가했다. '''현존하는 판본의 90%가 바로 이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필사본이다.''' 하지만 메로빙거 왕조에 비해 새로운 출판물의 수는 정체 내지 줄어들었다. 둘째, 카롤루스 대제가 학교라는 개념의 창시자라는 것은 잘못된 학설이다. 메로빙거 왕조에도 학교는 있었지만, 카롤루스 대제는 학교 수를 증가시켰을 뿐이다. 또한 전국 곳곳에 학교를 만들어 지식을 보편화시켰다는 설 또한 증빙이 부족하다. [[로마 시대]] 때도 그랬지만, 교육은 어디까지나 권력자들의 자녀들을 위한 것이었고, 규모나 시설도 근세적인 학교에 비해 너무 협소하고 조악했다. 팔라틴 아카데미 또한 고작 몇십 명의 지식인들이 모이는 사교 모임에 가까웠고, 중세 중기(12세기 즈음)에 발달되는 대형 고등 교육기관들인 "대학"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또 역설적으로 올바른 라틴어를 가르침과 동시에 라틴어를 구사하는 인구의 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서방의 라틴어는 메로빙거조와 카롤링거조를 거치면서 각자 독자적인 [[로망스어파]]들로 분화하기 시작하였는데 성직자들이 일반인이 구사하기에는 어려운 로마 제국 시절의 라틴어를 구사하자, 점차 일반인이 사용하는 언어와 성직자 내지 지식인이 구사하는 언어가 괴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반인들이 구사하는 언어는 점점 변형돼 원시 [[프랑스어]]로 변모하기에 이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